동다송-생성과 명상



오광수 
미술평론,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일관된 자기세계를 갖는다고 했을 때 우선 두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내면의 세계와 외면의 세계, 즉 관념의 세계와 양식의 세계로서 말이다. 
어떤 일관된 이념에 바탕을 두고 이를 천착해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자신만의 독자한 양식의 완성에 매진하는 경우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밖으로 드러난 양식보다는 이를 떠받치고 있는 정신세계가 항시 관심의 초점이 되며, 후자는 안의 문제보다 밖으로 드러난 세계의 가다듬음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게 된다.

백순실은 후자보다는 전자에 분류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그의 작품이 지니는 양식상의 독자성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양식상의 외형보다는 관념의 세계에 깊게 연루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그는 분명 이념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보여주는 관념의 세계는 다인(茶人)으로서의 생활과 깊은 관계를 지니는 것이다. 

그는 십 수년래 동다송(東茶頌)이란 주제를 지속해 오고 있다. 초의선사(草衣禪師)가 기술한 동다송은 한국차의 독특한 내면을 간직한 것으로, 이를 자신의 작품의 주제로 일관해 오고 있다는 것은 곧 동다송의 세계에 대한 깊은 신뢰와 감응에 의한 것임을 시사해 준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그는 다인으로서의 생활이 곧바로 창작의 에너지로 전환된다고 할 정도로 다와 창작은 불가분한 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다를 즐기고 다를 노래부르는 사람은 많지만 다를 자신의 창작의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경우는 백순실외에 따로 찾기가 힘들 것 같다.

여기서의 에너지란 단순한 관념으로서의 다의 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구체적인 세계로 전환되는 놀라운 실현으로서의 에너지를 지칭하는 것이다.
다맛은 실제로 음미되지만 그 향기는 관념의 세계에 속한다. 백순실의 창작의 비밀도 이처럼 구체적으로 음미되는 다의 실제성과 그 실제성을 넘어 존재하는 관념의 세계를 왕복하는데 있지않나 보인다.

그의 초기의 작품은 다의 잎을 연상시키는 선획이 촘촘히 엮어나가는 구성의 패턴이었다. 그것들은 작은 단위로 서로 응집되기도 확산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이 언저리에 자연적 이미지들이 끼어들어 다발 속에 들어와서 보는 풍경의 단면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다발이 매개된 자연의 풍경이 다양한 구성패턴으로 재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론 추상의 화면을 지속시키면서도 언제나 자연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이처럼 그의 최근 4년래 근작은 다의 색깔을 반영시키는 흙갈색의 차분한 바탕 위에 여러 생성적인 기호들이 자리잡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화면에서 오는 토온은 전의 작품이나 근작이 침잠된 무게로 일관되면서도 전의 작품들에서 보였던 전면화 현상과 분산적인 기호들의 배열에 비해 근작에선 기호의 응집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강한 생성적 기운이 지배되고있는 분위기를 접하게 된다. 추상적인 화면에서 점차 심상적인 풍경으로의 변화를 보이는 근작은 밖의 세계보다 무르익어가는 안의 단면을 시사해주고 있음을 만나게 한다. 극도로 절제된 구성과 색채의 선택은 단순화할수록 깊어가는 내면을 반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갈색바탕에 떠오르는 몽환적인 기호들과 이를 연결하는 강인하고도 탄력적인 띠들은 화면에 일정한 변화를 유도하면서 전체화면의 안정감을 유도한다. 안으로 응집되는 단순화와 밖으로 분출하는 확대의 조응이 생성의 신비로움을 더해주면서 조용한 명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의 화면이 갖는 또 하나의 인상은 식물적인 이미지 못지않는, 식물적 재료의 직접적인 구현으로 이미지와 매재의 융화를 기하고 있음이다.
커피물에 절여진 화면에 수성 아크릴과 때로 수묵이 첨가되는 매재의 특징은 안으로 스미는 내밀한 향기를 은은하게 발산해 주고 있다. 
다인으로서 그는 다를 생활화한데서 끝나지않고 다를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음으로써 다의 향기를 창작의 향기로 전환시키는 놀라운 변화의 시점에 다다르고 있지않나 생각된다.

균형과 안정감과 명상의 분위기로 감싸는 화면은 다를 생활화하고 내면화한 그의 창작의 비밀을 은밀히 반영해주고 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