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순실의 여운을 끄는 회화



미네무라 토시아키(峯村 敏明) 
미술평론가 

금년 1월말, 많은 사람들이 요코하마의 가나가와 현민홀에 모였다. 이는 백순실의 대규모 개인전이 개막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곳에 모인 또다른 이유는 그녀의 지인인 한국의 대표적인 첼리스트 양성원의 독주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회화와 음악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나도 그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프로그램에 슈베르트, 브람스, 코다이의 이름이 있어서 나의 기대는 더욱더 커졌다.

 

그런데 연주회에 앞서 전시공간에 발을 들여놓은 나는 두 개의 선물을 기대하면서 온 내 자신의 욕심 많음을 크게 부끄러이 여기게 되었다. 60점이 넘는 그녀의 그림과 100점은 됨직한 판화작품들은 명쾌함과 깊은 맛을 겸비한 대단히 풍부한 회화세계를 보여주고 있어 그림 한 점 한 점이 마치 샘이 넘쳐나듯 내게 창조력의 파동을 보내왔고 나를 막대모양으로 우뚝 서있게 하였다. 이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동경에서 오지 않으면 안되었다라고 반성함과 더불어  커다란 만족감을 맛보았다.

 

전시작품은 모두 백순실이 수년전부터 몰두해 온 「음악찬미音樂讚美」(Ode to Music)의 시리즈로 각 작품의 제목에는 작품에 영감이 되고 바탕이 된 클래식음악의 작곡자명과 곡명이 붙어있었다. 물론 특정 음악과 그림을 단순히 일대일로 대응시킬 수는 없다. 그림과 음악 사이에 눈으로 볼 수 없는 청취체험의 특이성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시곡(詩曲)이나 세레나데와 같은 단악장(單樂章)이라면 여하튼 소나타형식에 의한 심포니나 콘체르토와 같이 복수의 곡상(曲想)으로 구성된 악곡(樂曲)이 단 한 장의 그림이나 판화와 전면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한 곡의 음악에서 무엇을 담아낼 것인가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보이지 않은 자유, 기분, 재치에 속한다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백순실의 그림은 흐트러짐이 없이 음악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특정 곡에 대한 것은 몰라도 좋다. 그 곡을 화면 위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개개의 악곡이 찬양하는 울려퍼짐과 가락에 대응하는(또는 대응한다고 작가가 감득(感得)한) 형태, 구성, 색채,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마티에르의 고동(鼓動)이 완전한 회화적인 현상으로 화면 위에 조립되어 그곳에서 숨쉬고 있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백순실의 그림은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는 사람의 눈에도 완전히 독립적인 하나의 회화작품이며 더구나 그곳에 가득 채워진 회화적 운율에서 문득 음악의 세계를 느끼지 않고는 그냥 둘 수 없는 구조가 되어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회화와 음악을 별도의 원리에 기인한 이질적인 예술분야라고 믿어 온 것은 우리들의 태만이었다. 시각과 청각, 공간성과 시간성 등 양자간에 차이는 있다. 그러나 회화를 시각적인 형태(form)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그만두고 그것으로부터 어떤 반향을 느끼는 것과 같은 미학적인 수용력을 함양하도록 하면 이 이분법적인 시각은 크게 변하지 않을까. 중국의 화가들은 예로부터 형태보다도 「기운생동氣韻生動」을 존중하여왔다. 유럽의 근대화가들도 세잔이 붓끝의 필촉(筆觸)의 리듬을 이끌어 낸 것을 처음으로 하여 클레, 칸딘스키 등이 음악과의 통저요소(通低要素)를 탐색하여 왔다. 앵포르멜이나 폴리아코프는 물감의 까슬까슬한 마티에르가 만들어내는 시각화된 반향에 주목하여왔다. 그러나 오늘의 회화상황을 바라보면 아직도 이것이 자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백순실의 작품이 신선한 놀라움을 준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녀가 이러한 미술사적 흐름을 어떻게 의식하고 있는지 필자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작품 안에서 그녀는 회화사의 흐름을 자신만의 경험으로 융합시켜 그녀만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부하게 울려 퍼지는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랜 판화제작의 경험으로 그녀의 몸에 배인 듯한 평면적인 형태는 마치 거품이 일듯 회화적인 마티에르의 총명한 간섭을 받아 그림이 반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참으로 풍요롭게 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오늘밤 양성원의 열연하는 코다이의 첼로소나타는 유달리 깊은 반향에 그득 찬 것이었다.

 

(2008년 7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