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순실, 선율로 말 건네는 그림



서성록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백순실씨의 뚝심은 알아줄만하다. 그의 작업에 대한 열의는 이미 뉴욕과 파리, 동경과 서울에서 개최한 총 31차례의 개인전과 무수한 단체전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개인전만 손꼽아도 대학을 졸업한 후 어림잡아 1년에 한차례씩 개인전을 열어왔다는 얘기다. 말이 일년에 한차례지 이것은 쉽게 넘볼 수 있는 횟수는 아니다. 이는 일년 내내 작업에 매달려 있을 때에만 비로소 가능한 경력이다. 그만큼 백순실씨의 창작열이 왕성하며 작가정신이 치열한 작가다. 작은 체구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그런 백순실씨가 그간 작업실에 틀어박혀 일구고 가꿔온 결실을 세상에 내놓는다. 작가는 무려 1백20여점의 작품을 완성시켰다. 2001년에 <월간 피아노음악>과 맺은 약속을 7년만에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백순실씨로서는 이번이 첫 도전은 아니다. 그는 1990년대에도 <객석>에 6년간 연재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때 제작한 64여점의 판화작품을 묶어 <한국의 소리를 찾는다>(1,2권)를 펴낸 바도 있다.

 

그의 작업은 음악을 시각적으로 형용하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클래식 음악을 대상으로 하여 또 하나의 예술작품을 탄생시키는 과제다. 음악을 이해하는 풍부한 감성, 조형화시킬 줄 아는 능력, 그리고 어지간한 열정과 끈기가 없다면 엄두를 낼 수조차 없다.

 

화가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잘 하는 것은 아니다. 화가들은 주로 자신들이 선호하는 장르가 있다. 가령 정물화를 선호하는 사람, 풍경을 그리는 사람, 드로잉을 주로 하는 사람, 추상표현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 등등. 자기 취향에 맞는 장르는 추구한다. 그런데 한 방면에 오래 단련된 사람이 생소한 분야에 도전장을 낸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잘해도 ‘화가니까 당연하지’ 와 같이 기껏해야 본전 찾는 수준이고 잘못하면 ‘화가가 그것도 못해’ 하며 책(責)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기우로 끝나게 되었다. 작가는 뛰어난 음악해석과 다구진 조형솜씨로 주어진 과제를 거뜬히 해결하였으니까. 그에게 이번 과제는 자칫 나른해질 수 있는 창조적 여정에 활력을 주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그뿐이랴. 음악의 시각화라는 새 지평을 열게 되었다.

 

음악의 시각화

 

이번 작업에는 판화작품과 회화작품이 섞여 있다. 회화는 백순실씨의 전공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판화는 다루기가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핀을 맞추기도 어렵고 일일이 판을 따로 제작해야 하니까 공이 몇 배로 더 들어간다. 판화의 어려움은 이것만은 아니다. 판화는 프레스로 밀어 찍기까지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말하자면 작가 자신도 지례 짐작만 할 뿐이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직접 형태를 잡아 윤곽을 떠내고 색채를 발라 톤을 조절하는 회화와는 큰 차이가 있다. 쏟은 정성에 비해 얻는 성과가 적다는 이유로 적잖은 미술가들이 판화매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철저한 장인정신을 갖지 않고는 감당하기 힘든 게 판화매체의 속성이다. 그런 것을 꺼리지 않고 선뜻 판화를 선택했다는 것은 매체의 속성을 이미 마스터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 보면 매체의 특질이 작가의 의도나 작품내용을 전혀 거스르지 못한다. 작가의 몸짓 하나하나에 따라 흡사 크로노미터의 바늘처럼 정확하고 신속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게 된다.

 

 ‘오드 투 뮤직’(ode to Music)이라고 명명된 그의 작품은 우선 음악과 그림을 접목시켰다는 점이 이채롭다. 이채로운 정도가 아니라 그것은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한 분야에 출사표를 던진 백순실씨가 새롭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많은 작곡가의 작품을 조형언어로 전환할 수 있다는 발상이 놀랍다. 아마 이런 접근에는 두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는 음악에 대한 조예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이를 색과 형태로 재현할 수 있는 감각과 조형어휘력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백순실 화백은 이 모든 조건을 갖춘 화가이고, 그리하여 음과 리듬의 언어를 공간의 언어로 풀어내는 까다로운 프로젝트를 거뜬이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미술로 해석한 화가로는 독일의 파울 클레(Paul Klee)를 들 수 있다. 클레는 음악과 회화의 연관성을 깊이 있게 탐구한 사람이었다. 그는 모차르트를 ‘예술의 궁극적인 최고봉’으로 칭했으며 바흐에 심취되기도 했다. “어느 날 나는 색깔의 키보드 혹은 물감통에 있는 수채의 열(列)을 자유로이 즉흥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는 말에서 보듯이 음악 자체를 조형언어로 바꾸는 데에 힘썼다. 그는 음악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리듬과 색채로서 곡을 연주한 뮤지션이었다.

 

그와 관련해서는 이런 에피소드가 전해온다. 1921년 클레가 바이마르에 위치한 바우하우스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클레는 게오르그 무헤의 스튜디오 옆방에 머물게 되었는데 하루는 옆방에서 뭔가 둥둥거리는 소리가나서 무슨 소리인지 의아해 했다. 때마침 복도에서 클레를 만나 무헤가 “조금전에 이상한 소리를 듣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클레가 “아 그 소리 말입니까? 소리를 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림을 갑자기 그리게 되는 바람에 그랬어요. 왜 춤을 추게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그 소리를 들었다니! 창피하군요. 하지만 평소에 나는 춤을 추지 않습니다.”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말하였다. 클레가 얼마나 내면의 리듬에 예민한 사람이었는지 실감시켜준다. 그의 음악적 소양은 ‘다성적 회화’(Polyphonic Painting)로 일컬어지는 <고독>,<혼의 녹턴>,<새로운 하모니>,<스테이지 풍경> 등 수많은 명화를 탄생시켰다.

 

백순실의 ‘오드 투 뮤직’은 음악사를 찬란하게 수놓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금세 알 수 있는 작곡가들이어서 한층 친근감을 준다. 몇 작곡가를 소개하면,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 그로페의 <그랜드 캐년>,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 엘가의 <첼로협주곡 E단조>,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조곡>, 본 윌리엄스의 <푸른 옷소매에 의한 환상곡>, 베버의 <클라리넷 협주곡 1번>, 쇼송의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시곡>, 파야의 <발레음악 삼각모자>, 렘스키코르사코프의 <교향적 조곡>, 비에니아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포 레의 <레퀴엠>,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종달새로 알려진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제63번>, 알반 베르크의 <현악 4중주를 위한 서정모음곡>,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곡> 등등.

 

백순실씨는 화면에 음표를 찍는 심정으로 화면을 차곡차곡 채워간다. 그는 귀로 듣는 음악을 눈으로 인지하는 미술로 바꾸었다. 말하자면 신호체계가 다른 두 체계, 즉 청각부호를 시각부호로 전환시켜낸 것이다. 이것은 아날로그 시스템을 디지털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이런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작가는 미술 특유의 색감각과 심상풍경이라는 특별한 장치를 도입하고 있다.

 

선율에 몸을 싣고

 

백순실씨는 다채로운 재료로 구김살 없는 표현을 구사해왔다. 화산석이나 조개가루, 혹은 커피가루와 같은 자연에서 얻은 오묘하고 재료를 사용하여 영롱한 발색효과를 내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인 어린 시절부터 유화를 접하면서 색의 세계에 빠져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에게 색은 언어이며 벗과 같다. 그의 작업에 색이 빠진다면 연주자 없는 콘서트장과 같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흡사 웨딩마치를 올리려고 식장으로 걸어나오는 신부같이 환한 표정을 짓는다. 그림에는 파랑색이 자자하게 물결치며 일렁이고 노란색이 방긋 웃는 표정으로 얼굴을 살짝 내밀며, 또 황혼에 물든 듯 붉은 색이 화면을 적시고 야들야들한 연초록과 수줍은 보라가 곁들어져 있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를 보자. <클라리넷 5중주>는 사랑하는 클라라와의 관계가 서먹서먹해지면서 자신의 고뇌와 비탄을 표현한 곡이라고 한다. 백순실씨는 이 곡의 분위기를 어떻게 포착하였을까. 그림 앞에 다가서 보자. 화면은 갈색과 적갈색, 그리고 짙은 거무스레한 초코랫 색으로 덮여있다. 황혼이 진 무렵 대해에 외롭게 떠 있는 한 척의 배를 보는 것처럼 고독하다. 혹은 낙엽이 나뒹구는 거리를 고개를 떨구고 뚜벅뚜벅 걷는, 처량맞은 나그네를 묘사하고 있는 것같다. 이처럼 백순실씨는 브람스의 곡을 음울과 침묵이 휘감는 공간으로 해석해내고 있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도 사정이 비슷하다. 슈베르트는 음악사에서 가난과 고독에 떨며 지냈던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전체 24곡으로 구성되어 있는 <겨울나그네>는 죽음과 연민, 두려움과 슬픔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끝을 맺고 있다. 백순실씨는 이런 곡의 흐름을 흰 눈이 내리는 들판에서 눈물겹게도 한송이 꽃을 피우는 야생화로 대체하였다. 그림을 보면 희뿌연 공중을 정처없이 나부끼는 바람이 등장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작고 검은 동그라미들이 동동 떠다닌다. 하단에는 중심을 잃은 채 거리를 나뒹구는 낙엽이 눈에 띈다. 작가는 <겨울나그네>를 시련 속에서도 생명을 싹틔우는 가녀린 몸부림으로 풀어냈다. 흰눈 내리는 추위 중에 피어나는 핑크색 꽃에서 보듯이 곤경 중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표정 있는 색의 배치로 음악의 내용을 되살려냈다.

 

이번에는 막스 부르흐의 <콜 니드라이>의 경우는 어떨까. 이 작품은 평소 필자가 즐겨 감상하는 곡이다. 이 곡을 들을 때면 마음이 ‘경건의 날개’를 달고 솟아오르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부르흐는 유대교에서 속죄의 날에 부르던 성가를 변주곡형식으로 꾸몄다. 이 곡의 곳곳에는 절절한 비애가 강물처럼 굽이치며 흐른다. 백순실씨는 그런 비애를 구슬픈 감청색으로 나타냈다.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바다처럼 다함이 없는 세계의 광활함, 그 넓이와 깊이에 대해 갖게 되는 어떤 두려움을 전달해준다. ‘신의 날’이라는 제목처럼 창조주의 무한함을 접한다면 무서워서 아마 벌벌 떨 것이다. 작가는 그런 두려움 곁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발랄한 음표를 뜻밖에 첨부하였다.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 요량인 것이다. 결국 작가는 피조물로서 참회와 속죄 속에서 신을 만나는 것은 복된 일임을 은연중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화면 중심에 노란띠로 둘러쳐진 박스형태가 위치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지성소(Holy Tabernacle)를 암시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하는 동시에 속죄를 받은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는 거룩한 지점이다.

 

어둠침침한 색깔만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밝고 명랑하며 생기가 충천한 색깔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사계>가 그런 작품이다. 비발디의 <사계>는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독차지하는 작품이다. 곡 전개의 다채로움과 색채감에 반해 필자도 자주 듣는 편이다. 지저귀는 봄의 새소리, 여름의 권태로운 더위의 연속과 예기치 못한 폭풍의 엄습, 가을의 신나는 사냥장면과 기쁨으로 추수하는 농부의 춤, 겨울의 귀를 베어가는 듯한 혹독한 추위와 얼음 위를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옮기는 사람들을 각각 묘사하였다. 백순실씨는 비발디의 <사계>를 계단식 구도로 꾸몄다. 맨 상단에는 흰 눈꽃이 내리는 광경을, 그 다음에는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을, 노란 바탕에는 녹색의 숲이 우거진 여름의 정경을 담았고, 우측에는 앙상한 가지에 싹을 틔우는 봄의 정경을 담았다. 그리고 맨 하단에는 푸른 바탕에 건반 형태를 넣어 음악이 모티브가 되었음을 귀뜸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건반의 높낮이를 각각 달리해 시각적 리듬을 살려내고 있다. ‘생명’과 ‘활력’이 술렁이는 약동의 계절감각을 순도 높은 색과 역동적인 구성으로 감흥있게 표출해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5번>을 보자. 그림상단에는 붉은 색이 착색되어 있고 하단에는 핏기 없는 재색이 뒤덮고 있다. 화면 하단에 네모상자가 보이는데 바깥과 격리하듯 검은 테가 우직하게 둘러져 있다. 그것은 차라리 죄수를 가두는 철장 혹은 자유를 향한 의지마저 꺾는 높은 담처럼 보인다. 알다시피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태생으로 소련당국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만들라는 요구를 물리치다가 고초를 겪고 나중에는 체제에 순응한 작곡가이다. ‘혁명’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진실을 가리고 러시아인들에게 혁명의 긍정성을 기만적으로 고취시키기 위한 정치성이 농후한 작품이다. 백순실씨는 붉은 군대의 군화소리가 들리는 자유없는 세상, 그럴수록 더 피폐해지는 세상과 침울한 인간을 적나라하게 표현해냈다.

 

태초의 공간 속으로

 

음악을 표현한 그의 회화작품은 대체로 맑고 화사하다. 비록 소재가 음악으로부터 왔지만 거기에 곁들여 자신의 시각과 정취를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림에다 꽃물들이듯 화면을 푸르고 하얗고 연두빛으로 물들인다. 시정어린 공간이 따로 없다. 특별히 눈에 띌만한 형상보다 최소한의 이미지, 그리고 장식과 패턴을 사용하여 구체성을 불어넣고, 긋고 칠하고 뿌리고 펼치며 찍는 수법으로 화면의 다양한 표정을 살려냈다. 음악의 단순재현에 그치지 않고 그림으로서 충분조건을 갖추도록 유의했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에 기호 같은 이미지가 떠다니고 표면은 갈색톤으로 도포되어 있다. 사실 그의 화면에 떠받치는 것은 표면이 아니라 바탕이다. 깊이감을 만들어주는 바탕은 단 한번에 의해 나온 것이 아니라 몇 번이고 칠하고 덮고 긁고 중첩해서 얻어낸 것이다. 그래서 바탕을 보면 얼룩이 지고 상채기를 입고 어떤 것은 질펀한 모양을 하고 있다. 작가는 단호하게 분칠에 가까운 외양을 거부한다. 단단한 바탕 위에 집을 짓듯 그렇게 공간을 쌓아올리고 있는 셈이다.

 

사실 그림의 바탕은 땅에 대한 의미와 연관되어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땅을 생명체를 양육하는 의미를 지닌 상징적 공간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건 아니면 산책을 하건 길을 걷든 무슨 일을 하건 땅에 의지하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가 없다. 생명의 요람이 되어주는 땅의 숭고한 의미는 또한 어떤지... 그런 의식에 기초하여 바탕을 땅처럼 가꾸고 일구어놓은 것이다. 무엇이든 심기만 하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비옥한 곳으로 말이다. 우리는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얼마나 곧잘 잊고 사는지 모른다.

 

한편 그의 그림은 과거로부터 기억을 끌어오고 있다. 그림을 보면 삭아빠진 은행잎, 나뭇잎의 윤곽, 대지로부터 올라오는 새 싹, 씨앗, 식물, 줄기, 동그라미형태가 각각 눈에 띈다. 이런 이미지들은 물론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다. 일견 추상작품에 등장하는 기호쯤으로 오인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래된 책갈피에 끼워놓은 은행잎처럼 그것들은 한철의 영화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 영화를 회상하려는 듯 작가는 섬세한 손길로 화면을 구축해간다.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이렇듯 아름다운 세계가 탄생하게 되었는지 감상자에게 까마득한 태초의 공간 속으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모든 식물은 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 결정적인 단서를 쥐고 있는 것이 바로 씨앗이다. 씨앗은 자신의 유전적 DNA 안에 이미 탄생과 성장, 그 고유성에 관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다. 작품에 매번 등장하는 동그라미 형태는 그런 식물의 신비에 주목하게 만든다. 작가는 그 안에 어떤 무늬나 희미한 이미지를 새겨넣었다. 알이라고 보기에 타원형이거나 불규칙한 동그라미 형태를 띠고 있고, 화면을 장식하기 위해 기용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꾸밈의 성질도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베일에 가리운 듯 그 원형을 포장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동그라미에 대한 호기심이 한층 고조된다. 그리하여 그것이 무언가 식물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생명의 전과정에 작용한 힘이 무엇인지 그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암시해주고 있다.

 

백순실씨가 작품에서 주목하는 것은 생명의 중요성이며, 그 탄생의 비경임을, 그리고 그의 시선은 그 비경에 대한 놀라움과 감동에서 오는 것임을 알려준다. 그가 지금껏 멈추지 않고 달려올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다.

 

백순실씨는 늘 자연 가까이에 있고, 자연을 창조한 손길 가까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