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공감각의 잔치 - 백순실의 '베토벤과의 대화'전



2016-08-20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0477657 

예술 감상은 무엇보다 감각 활동을 통해 이뤄진다. 개념미술처럼 사유를 감각보다 우위에 두는 예술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감각의 경험이 없이는 어떤 예술작품도 지각되고 수용될 수 없다는 점에서 예술 감상은 원천적으로 감각에 의존하는 체험활동이라 하겠다.

감각은 다양하다. 자연히 예술마다 의지하는 수용기관이 다르다. 음악은 청각에, 미술은 시각에 의존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감각 사이에 전이·공명하는 작용이 있다는 것인데, 이를 우리는 공감각이라고 부른다. 그 대표적인 게 색청(色聽)이다. 어떤 음을 들으면 특정한 색이 떠오른다든지, 색이 변하면 다른 음이 떠오르는 게 바로 색청 현상이다. 이와 유사하게 특정한 냄새를 맡으면 특별한 색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다.

색청 현상을 구체적으로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색청은 어릴 때는 잘 느끼다가도 어른이 되면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감각이 서로 연결돼 있고, 이런 감각의 공명을 통해 우리가 세계를 입체적으로 느끼고 통찰할 수 있음을 안다. ‘거친 목소리’ ‘달콤한 색깔’ ‘차가운 눈빛’ 등의 수사에서 세계를 공감각적으로 느끼는 우리의 능력을 본다. 이런 공감각 세계에 천착해 온 대표적인 화가 중 한 사람이 백순실이다.

 

1.jpg

백순실의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4 G장조 Op.58’. (그림)으로 듣는 음악이다. [사진 고려대박물관]

 

그는 시각예술인 미술을 통해 오랜 세월 후각과 미각, 청각의 세계를 탐구해 왔다. ‘동다송(東茶頌)’ 시리즈에서 우리 차의 맛과 향을 표현했고, ‘음악에 바치는 송가’ 연작에서 클래식 음악의 다채로운 울림을 형상화했다. 그중 베토벤 음악을 주제로 한 것을 주로 선보이는 게 ‘영혼의 울림-베토벤과의 대화’전(28일까지·고려대박물관)이다. 이를테면 눈이 귀에게 들려주는 세레나데 같은 것이다.
 

화가는 어떻게 음악의 세계를 시각화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냥 통째로 몰입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감각의 세계에서 분석과 추론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감각을 통한 몰입은 직관을 강화시켜 주고, 이 직관이 음악을 미술로 ‘번역’해 낸다. 물론 직관은 분석처럼 명확하지 않다. 그러므로 백순실의 작품을 보고 ‘내가 느낀 베토벤과 다르다’고 해도 이는 결코 괘념할 일이 아니다. 어차피 예술 창작은 정답을 찾는 연산행위가 아니다. 세계의 본질을 꿰뚫는 직관이 예술가의 개성과 주관을 통해 꽃피어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락이 형상으로 ‘성육신’하는 그 현장을 목격하는 것이다. 또 색채가 화음으로 ‘승천’하는 그 순간을 만끽하는 것이다. 그 발랄한 공감각의 잔치가 우리로 하여금 큰 해방감과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이를 위해 백순실이 ‘음악의 시각화’에 매진한 세월이 어언 15년이다.

갈수록 모든 것이 복잡하고 정교해지는 시대다. 그럴수록 우리는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것을 더 원하게 된다. IT기기의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방향으로 발달해 온 것이 그 단적인 사례다. 그런 점에서 풍부한 공감각적 경험을 하게 하는 백순실의 예술은 복잡해진 두뇌가 마음의 평화를 찾도록 도와주는 근사한 인터페이스가 아닐까 싶다.

 

이주헌 미술평론가